본문
이때까지 해온 게임 번역 프로젝트에서 거의 유일하게 개발자들의 도움으로 체계적으로 로컬라이징 된 사례였다.
기존 게임 번역을 할때 크라우딘이라는 유저 참여형 번역 플랫폼을 사용한 경우도 있었고, 그냥 생짜 텍스트 파일을 받은 적도 있었고, 깃헙에 있는 로컬라이징 파일을 수정해야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게임은 구글 독스의 스프레드 시트를 사용해서 번역되었다.
이 게임을 번역하게 된 이유는 순전히 내가 자주 보던 Forsen이라는 해외 트위치 스트리머의 방송에서 플레이하는 것을 보게되었고 그게 재밌어 보여서 시작한 일이다.
방송을 보고 게임 자체도 매력적이지만 트위치 스트리머들에게 있어서도 매력적이라는 느낌을 받아서 커뮤니티 번역을 지원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한글패치라는 방식에 회의감을 가지고 있었고 기존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스팀 커뮤니티 페이지를 이용해서 개발자와 연락을 하게 되었다.
개발자는 디스코드의 링크를 줬고 그곳에서 개발자와 DM을 하며 연락하다가 Reventure의 공식 디스코드에 들어가서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첫 연락때 했던 메시지에는 기존에 내가 참여했던 번역 사례들과 내가 했던 일부 영상 자막들을 보내주었고 흔쾌히 승낙을 받았다.
이때 나는 이 게임의 매력적인 스크립트를 로컬라이징 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원문과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는데 양해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어느정도 번역을 진행하면서 나름 다르게 번역된 부분들도 있다. 하지만 최대한 원문을 살릴려고 했는데 그 과정에서 잘못된 번역들도 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P4WNED라는 걸 개1발림으로 한건 전투신에서 반갈죽났기 때문에 leet를 살리면서 컷신의 묘사도 나타내는 괜찮은 번역이었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해적 보물엔딩에서는 의도한 것과는 달리 이게 뭐지? 하고 넘기는 사람들도 꽤 많았던 것 같다. 해적판이라는 의도를 살리고싶었는데 아마 복스러운 보물이라던지 게임 케이스에 크랙이 있었다던지 그런식으로도 살릴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렇게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번역을 시작하게되었고 초벌 번역까지는 대략 1주일의 시간이 걸렸다.
이 시점에서 내가 프로젝트에 참여했을때 게임 내에서 원문에서는 Burger로 나온것을 각 국의 언어 설정을 불러와서 각 국의 음식으로 넣어주겠다는 계획이 있었나보다. 근데 이미 내가 번역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스팀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보고선 김치로 정해져 있는 상태였다.
나는 이걸 몰랐고, 원문인 버거대로 번역을 했다. 번역을 끝내고 보니 게임 내에서 보이는 것은 버거가 아니라 웬 이상한 스프라이트였고, 디스코드의 로그를 찾아보니 내가 디스코드에 들어오기도 전에 김치로 결정되어있는 상태였다. 이런걸 미리 알았다면 불고기나 비빔밥을 했겠지. 어쩌다보니 이런식으로 김치 홍보의 효과를 체감 할 수 있었다.
초벌이 끝나고 나서 보니 번역은 완료되었지만 실제로 플레이를 해봐야 이 번역이 제대로 된건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개발진에게 번역을 테스트 해볼 방법은 없냐고 하니까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고, 어쩔 수 없이 다음 릴리즈까지는 조금씩 수정해가면서 기다리기로 했다. 번역하면서도 번역체를 최대한 유지하는건 이래저래 고민이 많았다.
어투를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다가 내 기준에서 비슷한 고전 도트게임 같은데에 쓰이는 다나까 스타일로 끝나는 어투를 사용하면서도 농담이나 반전에 대한 부분에서는 그냥 존댓말을 사용해서 분위기에 구분을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번역을 했다. 이는 기존 고전 게임들의 어투를 지키면서도 장난기 있는 농담이나 좀 다른 분위기의 대사가 나온다면 그 어투를 버림으로써 이게 농담인지 아닌지 구분 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이게 괜찮은가 싶으면서도 막상 적용하니까 그렇게 눈에 띄는 부분도 아니었고 어색하다고도 느끼지 않았으니 그냥 진행하기로.
또한 특수문자에다가 딜레이 처리를 넣은것 같아서 최대한 특수문자는 동일하게 사용하게 만들었고, 번역하면서 레퍼런스를 찾아가면서 어떻게 하면 이걸 패러디 한것을 알게 될까? 라고 생각하며 번역했다. 그러다보니 잘 안 알려진 패러디의 경우에는 최대한 비슷한 패러디를 채용했다. 정확히 뭐가 있었는지는 기억이 안남. 그마저도 애매할 경우에는 그냥 직역해버렸다. ex) 드라카리스틱한!, 은 아니면 납을!
릴리즈를 기다리는 동안 이미 다른 누군가의 한글패치가 공개되었고, 이를 개발자에게 전달하니 개발진은 빠른 업데이트를 통해 hackey 스러운 번역은 피하도록 하고 다음 릴리즈를 통해 번역을 제공하겠다는 답변을 했다.
릴리즈가 끝나고 보니 내가 했던 번역들에서 일부분의 폰트가 깨져나오는 현상이 발견되었다. 그것을 전달하니 개발진 측에서는 이런것은 다른 버그픽스나 업데이트보다도 사소하다고 생각하며 다음 릴리즈까지는 기다려야한다고 답변을 받았다.
어쩔 수 없으니 일단 업데이트된 번역으로 플레이하면서 수정을 조금씩 해나갔고, 위에 있던대로 폰트가 깨지는건가 싶어서 새로운 오픈소스 폰트를 넘겨줬다. 아무래도 추후의 모든 업데이트에 있어서 해당 글자들이 깨지는 상태로 방치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혼자서 테스트를 하며 최대한 깨지는 글자들을 잡아서 다른 글자, 다른 단어로 교체했고 번역들을 수정하고 있었다.
아직도 폰트 수정은 되지않은 것 같은데 완성형은 안되는건지 아무튼... 이런 경우를 본 적은 있어도 해결해 본적은 없어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애초에 개발측에서도 크게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더이상의 픽스는 없을 듯.
개발진에서 디스코드에서 날 호출하길래 뭔가 했더니 트위치 스트리머들이 내 번역으로 플레이하고 있다는 이야기.
알려줘서 고맙다고 하고 넘겼어야했는데 술쳐먹은 상태에서 어그로 끌다가 타임아웃 당함. 지금 생각해도 병신같다. 그 날 이후로 내가 번역한 게임은 안 찾아보기로 했다.
내 번역이 구릴거란 생각을 하고 다른이들이 번역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것을 기대했으나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혼자서 계속 플레이해보면서 혹시나 좀 이상한게 있을까 하고 수정해나갔다.
그리고 스트리머들이 방송하고 유튜브에도 영상이 올라오기 시작하자 채팅과 방송인들의 반응을 보면서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되는 번역을 잡아나갔고, 대충 완성되었다고 생각되었을때 쯤 디스코드에서도 관심을 떼기 시작했다.
그러고 몇달이 지나서 디스코드 서버에서 번역자들을 호출했고 커뮤니티 번역자들을 기리기 위해서 캐릭터와 대사 한줄 씩 넣어준다는 말을 들었다.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개발자들에게 뭘 받았냐고 물어보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아무것도 없다고 하면 놀리는 반응도 있고 다양한 반응이 있었다. 그래도 안주거리로는 적당한 이야기긴 했다.
다른 몇몇 프로젝트는 유명하지도 않았고 중간에 개발자의 연락이 끊어져서 끊어진 시점 이후로는 개발자측에서 아예 번역기를 돌려버리는 것도 있었고. 그나마 제일 멀쩡하게, 유명해진 게임이 아닌가 싶다. 사실 아직도 번역을 가끔 수정하면서 지내곤 한다.